들어갈 땐 빈손, 나올 땐 쇼핑백…뇌물 발뺌 관세청 간부 '덜미'

입력 2024-01-18 11:30   수정 2024-01-19 19:53


2022년 9월 23일 오후 3시 14분. 한 사람이 관세청 간부와 함께 인천공항세관의 한 사무실로 들어갔다. 빈손이던 이 사람은 3시 55분 흰색 쇼핑백을 들고나와 서둘러 세관 밖으로 나갔다.

사무실 앞 CCTV에 찍힌 40분 분량의 이 영상은 6개월 전 삭제됐지만, 검찰이 복구에 성공하면서 뇌물 사건의 결정적 증거로 등장했다.

세관 사무실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은 세관의 불법 외화 송금 수사를 무마해달라는 청탁을 맡은 브로커. 흰색 쇼핑백 안에 있는 것은 현금 8000만원이었다. 관세청 간부가 “청탁받는 일을 성사시키기 어렵게 됐다”면서 브로커에게 받았던 1억원 중 본인이 쓴 돈을 제외한 나머지를 되돌려준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브로커가 진술했던 내용을 뒷받침하는 영상 증거가 나오면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던 관세청 간부의 논리는 법정에서 통하기 어려워졌다. 이 간부는 뇌물 6억원을 요구하고 총 1억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말 1심에서 징역 9년, 벌금 6억원을 선고받았다.
뇌물부터 몰카 범죄까지
CCTV 복구의 일등 공신은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멀티미디어복원실이 직접 연구개발한 멀티미디어 복원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영상과 음성의 최소 단위인 ‘프레임’을 복원하는 기술을 적용해 영상, 사진, 음성 등 각종 자료를 복원시킨다. 아무리 오래전에 촬영했더라도 복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데이터 조각만 남아있다면 되살려낼 수 있다. 대검찰청은 최근 일선 검찰청의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이 같은 복원 프로그램 수십 개를 적극 동원하기로 하고 활용 사례를 늘려가고 있다.

지난해 8월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온 ‘몰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도 이 프로그램이 특급 도우미 역할을 했다. 40대 남성 A씨는 길거리에서 휴대전화로 여성들의 신체를 300여차례 몰래 촬영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그런데 재판이 막 시작됐을 때 A씨가 찍은 영상들이 담긴 USB가 손상됐다. A씨 측은 이전까진 ‘일부 무죄’라는 입장을 보이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전부 무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검찰청이 USB에 담긴 모든 영상을 복원하면서 A씨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형을 받게 됐다.


검찰은 이외에도 조건만남을 요구한 미성년자를 협박해 성 착취를 한 20대 남성의 스마트폰을 포렌식 한 결과물이 담긴 DVD가 손상된 것을 복구하는 등 각종 범행의 물적증거 확보에 복원 기술을 적극 적용하고 있다. 범죄 형태가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혐의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디지털 자료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결정적 증거 잡아내는 복원 기술
특히 2022년 형사소송법 제312조 개정안 시행으로 피고인·변호인이 동의했을 때만 피의자 신문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디지털 자료의 존재감이 한층 커지는 분위기다. 이제는 피고인 측이 검찰 조사 단계에서 범행을 자백했더라도 재판에서 말을 바꾸면 자백 내용을 증거로 쓸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대검찰청은 개정안 시행 직후부터 디지털 자료를 활용한 과학수사 방식을 강화하고 있다. 일선 수사 인력들을 상대로 피고인에게 영상녹화 조사를 권고하고, 과학수사 방식을 최대한 동원하는 식이다.

소병민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멀티미디어복원실장은 “디지털 자료들은 수사에서 결정적 증거 역할을 하지만 훼손하기도 쉽기 때문에 범행 이후 인멸되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다양한 증거복원 기술이 도입되면서 재판에서 범죄 사실을 드러내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성/권용훈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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